마음이 요동치는 날, 골로새서 3장에서 배우는 그리스도의 평안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평안은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Bible Hab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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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요동치는 날, 골로새서 3장에서 배우는 그리스도의 평안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평안은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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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대개 큰 사건이 닥치기 직전에만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일 없는 하루에도 마음은 쉽게 흔들립니다. 답장이 늦게 오는 것만으로도 생각은 멀리 달려가고, 해야 할 일은 쌓여 있는데 몸과 마음은 지쳐 있을 때 작은 일 하나에도 중심이 무너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평안을 문제 없는 상태로 여깁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평안은 그보다 훨씬 깊고 분명합니다. 성경의 평안은 단지 상황이 고요해서 생기는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과 바른 관계 안에 있는 사람이 누리는 실제적인 안정입니다.
그 출발점은 언제나 복음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5장 1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그리스도인의 평안은 자기 암시나 일시적인 위로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사실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습니다. 이 복음의 토대가 분명할수록 마음의 평안은 얇은 기분이 아니라, 흔들려도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자리로 우리 안에 자리 잡습니다.
오늘 특별히 붙들고 싶은 본문은 골로새서 3장 15절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여기서 바울은 평강을 단지 마음 한구석의 위로로 말하지 않습니다. “주장하게 하라”는 표현은 그리스도의 평강이 마음의 중심에서 판정하고 다스리게 하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두려움, 조급함, 자기 확신이 내 안의 결정권을 쥐지 못하게 하고,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강이 생각과 태도를 이끌게 하라는 것입니다.
골로새서는 여러 거짓 가르침과 혼합주의적 분위기 속에 있던 교회에 보내진 편지입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고, 눈에 보이는 규례와 지식을 더해 안정감을 얻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정반대로 말합니다. 충만함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고, 성도는 그분 안에서 새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평안도 결국 무언가를 더 붙드는 데서 자라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루신 일을 신뢰하는 데서 자랍니다. 불안할수록 사람은 이것저것 더 통제하려 하지만, 믿음은 통제의 손을 펴고 주님의 다스리심 아래 머무는 일입니다.
이 평안은 현실을 외면하는 태도와 다릅니다. 성경은 슬픔도, 염려도, 눈물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시편에는 흔들리는 마음의 고백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그 흔들림을 최종 결론으로 삼지 않습니다. 이사야 26장 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마음이 원래 강해서 평안한 것이 아닙니다. 주를 신뢰하기에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는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평안의 근거가 내 성격이나 능력이 아니라는 사실은 큰 위로가 됩니다.
일상에서는 이 말씀이 어떻게 적용될까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중요한 발표나 보고를 앞두고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준비는 했지만 결과를 장담할 수 없고, 작은 실수 하나가 오래 남을까 봐 마음이 계속 예민해집니다. 이런 순간 우리의 마음은 자주 두 방향으로 치우칩니다. 하나는 모든 결과를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과도한 통제욕이고, 다른 하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불안에 끌려다니는 무기력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평안은 그 사이에서 우리를 바로 세웁니다. 내가 해야 할 책임은 성실하게 감당하되, 결과까지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해 움켜쥐지 않게 합니다. 해야 할 일과 맡겨야 할 일을 구분하게 하는 것이 성경적 평안의 중요한 열매입니다.
그래서 불안한 날에는 막연히 괜찮아질 거라고 되뇌는 것보다, 먼저 염려의 이름을 분명히 적어 보는 일이 힘이 됩니다. 무엇이 두려운지, 내가 잃고 싶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왜 이 문제가 나를 이렇게 흔드는지 차분히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말씀 앞에 놓아야 합니다. 골로새서 3장은 평강과 함께 감사, 그리고 말씀의 풍성이 함께 가야 함을 보여 줍니다. 이어지는 16절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라고 말합니다. 즉 평강은 빈 마음에서 저절로 생기지 않습니다. 말씀으로 채워진 마음에서 자랍니다. 말씀 없는 평안은 오래가지 못하지만, 복음으로 채워진 마음은 흔들려도 다시 중심을 찾습니다. 말씀을 꾸준히 읽고 묵상하는 훈련이 필요하다면 성경 읽기나 오늘의 말씀을 통해 매일 본문을 차분히 이어 가는 것도 힘이 됩니다.
이 점에서 감사도 중요합니다. 감사는 문제를 축소하는 기술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베푸신 은혜를 잊지 않는 믿음의 태도입니다. 사람은 불안할 때 아직 오지 않은 손실만 크게 보고, 이미 받은 은혜는 금세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성도에게 가장 큰 은혜는 이미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고, 정죄에서 벗어났으며,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면 현재의 문제는 여전히 무겁지만, 그것이 내 삶의 주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또한 평안은 순종과도 깊이 연결됩니다. 시편 119편 165절은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라고 말합니다. 마음이 불안한 이유가 늘 환경 때문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미루고 있는 순종, 정리하지 않은 죄, 계속 붙들고 있는 원망이 내면을 소란하게 만듭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막연한 위로가 아니라 회개와 돌이킴입니다. 죄를 가볍게 여기면서 평안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서서 잘못을 인정하고 돌이킬 때, 상황이 즉시 달라지지 않아도 마음은 다시 제자리를 찾아갑니다.
평안은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감정이 아니라, 말씀과 믿음 안에서 길러지는 태도이기도 합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수많은 소식과 비교가 마음을 흔드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더 의식적으로 시선을 바로 두어야 합니다. 잠깐 멈춰 성경 한 단락을 천천히 읽고, 반복되는 단어를 살피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묵상하는 일은 생각보다 큰 차이를 만듭니다. 불안을 없애는 즉효약처럼 보이지는 않아도, 이런 시간이 쌓일수록 마음의 중심은 분명히 달라집니다. 같은 문제 앞에서도 덜 휩쓸리고, 더 바르게 판단하게 됩니다. 꾸준한 말씀 습관을 세우고 싶다면 성경 읽기 습관 7가지 같은 글을 참고해 자신에게 맞는 리듬을 점검해 보는 것도 유익합니다.
결국 그리스도인의 평안은 세상이 말하는 안정감과 다릅니다. 세상은 예측 가능성과 통제력에서 평안을 찾지만, 성경은 하나님과의 화목과 그리스도의 다스리심 안에서 평안을 말합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은 여전히 눈물 흘릴 수 있고, 여전히 부담을 느낄 수 있지만,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설 이유를 압니다. 내 삶의 마지막 결론이 내 능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 신실하신 주님께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마음이 유난히 소란하다면, 먼저 내 안을 다스리는 것이 두려움인지 그리스도의 평안인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눈앞의 문제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문제보다 크신 주님을 기억하는 것, 그리고 말씀에 비추어 오늘 순종할 한 걸음을 조용히 내딛는 것, 바로 그 자리에서 성경이 말하는 평안은 멀리 있는 개념이 아니라 삶 속에서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자라기 시작합니다. 불안이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평안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는 바로 그 자리에서 복음을 다시 붙들며 주님의 다스리심을 신뢰하는 법을 배워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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