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산에서 십자가까지, 율법이 드러내는 하나님의 거룩과 은혜의 길
율법은 하나님의 거룩과 사랑을 드러내는 지침이며, 복음과 올바른 관계를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Bible Hab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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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산에서 십자가까지, 율법이 드러내는 하나님의 거룩과 은혜의 길
율법은 하나님의 거룩과 사랑을 드러내는 지침이며, 복음과 올바른 관계를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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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다 보면 율법은 자주 오해받는 주제입니다. 어떤 사람은 율법을 그저 지켜야 할 규칙의 묶음으로만 여기고, 또 어떤 사람은 복음의 시대가 왔으니 이제는 거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율법을 그렇게 가볍게 다루지 않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보여 주는 말씀이며, 인간의 죄를 드러내는 빛이고, 결국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율법을 바르게 읽는 일은 복음을 더 깊고 선명하게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합니다.
먼저 기억할 것은 율법이 구원의 출발점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시기 전에 먼저 그들을 애굽에서 건져 내셨습니다. 출애굽기 20장을 보면 십계명이 시작되기 전에 하나님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출 20:2)라고 먼저 선언하십니다. 이 순서는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먼저 구원하시고, 그다음 구원받은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십니다. 율법은 구원을 얻기 위한 대가가 아니라, 은혜로 구원받은 자에게 주어진 삶의 방향입니다.
이 점을 놓치면 신앙은 쉽게 두 갈래로 무너집니다. 하나는 자기 의에 빠지는 길입니다. 나는 남들보다 낫고, 나름대로 성실하고, 종교적으로도 꽤 괜찮으니 하나님 앞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끝없는 낙심입니다. 아무리 애써도 늘 부족하니 결국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고 여기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둘 다 잘못된 길이라고 말합니다. 율법은 사람을 자랑하게 하려고 주어진 것이 아니고, 사람을 절망 속에 버려 두려고 주어진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참된 상태를 보게 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찾게 합니다.
바울은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롬 7:12)라고 말했습니다. 율법 자체는 선합니다. 문제는 율법이 아니라 죄인인 우리입니다. 거룩한 기준 앞에 서면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쉽게 비뚤어지는지가 드러납니다. 겉으로는 점잖아 보여도 속으로는 교만할 수 있고, 친절한 말 뒤에 계산이 숨어 있을 수 있으며, 바른 행동처럼 보여도 결국 자기 영광을 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율법은 바로 이런 마음의 숨은 층을 드러냅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보여 주신 해석은 이 점을 더욱 분명하게 합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단지 칼을 들지 않았다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형제에게 함부로 분노하고 업신여기는 마음도 하나님 앞에서는 가벼운 일이 아닙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도 단순히 행위 하나만 가리키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28). 그러니 율법은 겉모습을 다듬는 도구가 아니라, 마음 깊은 곳까지 비추는 거울입니다. 사람이 스스로 괜찮다고 여길수록 이 거울 앞에서는 오히려 더 분명하게 자신의 한계를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도 율법은 이런 역할을 했습니다. 광야에서 백성은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했지만 곧바로 순종의 백성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그들은 금송아지를 만들고, 원망하고, 두려움에 흔들렸습니다. 율법이 주어졌다고 해서 인간의 본성이 곧장 바뀌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율법은 그들의 불순종을 더 또렷하게 드러냈습니다. 이것은 율법의 실패가 아니라 인간 죄성의 현실을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역사서는 단순히 옛사람들의 실패담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 앞에서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반복해서 증언하는 기록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율법이 부정적인 기능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은 무엇인가를 보여 줍니다. 십계명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하나님만 예배하라는 명령은 그분만이 참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거짓 증언하지 말고, 탐내지 말라는 말씀은 하나님이 질서와 진실과 거룩을 사랑하신다는 뜻입니다. 또 레위기와 신명기의 여러 규례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대충 살도록 두지 않으시고, 예배와 삶 전체에서 거룩함을 요구하신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특히 구약의 제사 제도는 오늘의 독자에게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복음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짐승의 피가 반복해서 드려졌다는 사실은 죄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뜻입니다. 히브리서 9장 22절은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일은 아무 대가 없이 가능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배경 위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무시하신 분이 아니라 완전하게 이루신 분입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 5:17)라는 주님의 말씀은, 복음이 율법과 대립하는 값싼 면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드려야 했지만 드릴 수 없었던 완전한 순종을 이루셨고,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지셨습니다. 그래서 죄인은 자신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습니다. 이것은 신앙의 주변부가 아니라 중심입니다. 인간은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습니다. 바울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롬 3:28)라고 선언합니다. 율법이 우리의 상처를 드러낸다면, 복음은 그 상처를 덮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그리스도인은 율법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더 이상 율법으로 구원을 얻으려는 방식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율법을 필요 없는 유물처럼 밀어내서도 안 됩니다. 율법은 여전히 하나님의 뜻과 성품을 가르칩니다. 우리는 율법을 통해 하나님이 무엇을 미워하시고 무엇을 기뻐하시는지 배웁니다. 동시에 그 기준 앞에서 내가 얼마나 쉽게 흔들리는지도 정직하게 보게 됩니다. 이 두 가지가 함께 갈 때, 율법 읽기는 정죄에 짓눌리는 시간이 아니라 복음 안에서 더 낮아지고 더 맑아지는 시간이 됩니다.
이 점은 성경 통독이란 무엇인지 생각할 때도 중요합니다.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다 보면 율법, 역사서, 시편, 선지서, 복음서와 서신서가 서로 끊어진 책이 아니라 하나의 구속사 안에서 연결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또 맥체인 성경읽기란 관점으로 읽으면 구약과 신약을 함께 따라가며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힘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읽는 양 자체보다, 말씀 전체가 결국 그리스도를 증언한다는 사실을 붙드는 것입니다.
일상에서도 그렇습니다. 직장에서 사소한 거짓은 다들 하는 일이라고 여기기 쉽습니다. 실적을 조금 부풀리고, 책임을 슬쩍 피하고, 유리한 말만 남기는 것은 세상에서 능숙함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그것이 지혜의 문제가 아니라 진실의 문제로 드러납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바깥에서는 예의 바르고 신앙적인 사람처럼 보여도, 가까운 이들에게는 날카로운 말과 무관심을 쏟아낼 수 있습니다. 율법은 이런 분리된 삶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따로 자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읽을 때 우리는 단순히 “해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에서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이 말씀 속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으로 나타나시는가, 나는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며 무엇에 기대고 있는가를 함께 물어야 합니다. 이런 방식의 읽기는 묵상이란 무엇인지 더 잘 보여 줍니다. 율법은 딱딱한 조문집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세우는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필요하다면 오늘의 말씀처럼 짧은 본문부터 천천히 붙들고, 성경 읽기나 365일 읽기 일정을 활용해 꾸준히 읽어 가는 것도 힘이 됩니다.
결국 율법은 복음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필요를 깊이 깨닫게 합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기준을 낮추지 않고, 복음은 그 높은 기준 앞에서 무너진 죄인을 그리스도 안에서 살려 냅니다. 그래서 율법을 진지하게 읽는 사람은 자기 자랑으로 나아가지 않고 은혜 쪽으로 더 가까이 갑니다. 그리고 복음을 아는 사람은 율법을 두려운 채무 문서처럼 보는 대신, 거룩하신 하나님이 어떤 삶으로 우리를 빚어 가시는지 배우게 됩니다. 시내산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거룩하심의 요구는 십자가에서 흐려지지 않았고, 오히려 그리스도 안에서 얼마나 크고 무거운 사랑이 우리를 붙드시는지 더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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앱에서 시작하기말씀을 읽다가 율법의 엄중함 앞에서 마음이 무거워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무거움이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도록 두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그 자리에서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거룩과, 그런 죄인을 위해 자기 아들을 내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함께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때 율법은 우리를 정죄 속에 가두는 벽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깨닫게 하는 통로가 됩니다. 오늘도 말씀 앞에 자신을 세우는 사람은 자기 힘이 아니라 복음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길을 다시 배우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