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사랑의 기준은 내 안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19). 우리가 사랑할 만한 여유가 있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인이던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사랑의 출발점입니다. 십자가는 사랑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 줍니다. 로마서 5장 8절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자기 계발의 결과가 아니라, 복음에서 흘러나오는 감사의 열매입니다.
그렇다면 사랑은 어떻게 실제로 자라날까요. 사랑을 느낌이 아니라 결단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늘 누구를 향해 참아야 하는지, 누구에게 먼저 말을 걸어야 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사랑은 말로도 표현되어야 합니다. 마음에만 있는 사랑은 종종 전달되지 않습니다. 감사와 격려, 사과를 미루지 마십시오. 작은 섬김으로 옮겨야 합니다. 아픈 사람에게 안부를 묻고, 지친 사람의 짐을 조금 덜어 주고, 미워하는 마음이 생길 때 그 사람을 향해 선한 말을 선택하는 것이 시작입니다. 용서를 배워야 합니다. 용서는 잘못을 가볍게 여기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앞에 맡기며 복수의 자리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매일 말씀 앞에 서는 일은 사랑의 훈련과 깊이 연결됩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짧은 본문을 붙들고 하루를 시작하다 보면, 사랑이 필요한 구체적 장면이 더 또렷하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또 성경을 읽다가 마음에 남는 구절은 성경 읽기 안에서 표시해 두면 감정이 앞서는 날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꾸준히 읽는 흐름을 돕는 365일 읽기 일정이나 자신의 걸음을 점검하는 진도 계산기 같은 도구도 말씀 앞에 머무는 습관을 세우는 데 유익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타고나는 성격보다, 말씀에 비추어 다듬어지는 삶에 가깝습니다.
혹시 지금 사랑이 가장 어려운 대상이 있습니까. 가족일 수도 있고, 교회 안의 누군가일 수도 있으며, 어쩌면 자기 자신일 수도 있습니다. 그럴수록 사랑을 거창하게 시작하려 하지 마십시오. 오늘 단 한 번의 온유한 대답, 한 번의 경청, 한 번의 정직한 사과가 사랑의 문을 엽니다. 묵상이란을 다시 생각해 보면, 말씀을 오래 바라보는 이유는 단지 아는 것을 늘리기 위함이 아니라 그렇게 살기 위함입니다. 말씀을 읽고도 삶이 바뀌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직 그 말씀 앞에 충분히 머물지 않은 것일 수 있습니다.
사랑은 약한 감정이 아니라 강한 순종입니다. 하나님께 사랑받은 사람은 완벽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받은 사랑 때문에 다시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우리의 의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은혜를 비추는 열매입니다. 오늘 당신의 하루가 그런 사랑으로 한 걸음 더 깊어지기를 바랍니다. 지금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나는 어떤 말과 행동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 줄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