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2장, 지붕을 연 믿음과 사랑
중풍병자 치유 사건에서 참된 믿음은 사랑과 실천으로 증명된다는 교훈을 전합니다.
Bible Habit
1 / 5
마가복음 2장, 지붕을 연 믿음과 사랑

마가복음 2장에서 배우는 믿음의 동행, 지붕을 열고라도 사람을 주님께 데려가는 사랑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말씀을 많이 아는 것과 말씀대로 움직이는 것 사이에 적지 않은 거리가 있음을 자주 느끼게 됩니다. 마음으로는 주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정작 누군가의 아픔을 자기 일처럼 품고 움직이는 데에는 쉽게 머뭇거리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2장 1절부터 12절에 나오는 중풍병자 치유 사건은 바로 그 지점을 깊이 비춥니다. 이 본문은 단지 기적의 놀라움만 보여 주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믿음이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는지, 그리고 한 사람을 주님께 데려가는 사랑이 얼마나 실제적이어야 하는지를 함께 보여 줍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여러 날 후에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셨다는 말로 시작됩니다. 예수님이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퍼지자 많은 사람이 모여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었습니다. 당시 가버나움은 갈릴리 사역의 중요한 중심지 가운데 하나였고, 이미 예수님의 가르침과 권능에 대한 소문이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병 고침을 기대했을 수도 있고, 권위 있는 말씀을 직접 듣고 싶었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그 집은 사람들로 가득 찼고, 누군가를 안으로 데리고 들어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데리고 옵니다. 마가복음은 짧게 기록하지만, 이 장면에는 많은 수고가 담겨 있습니다.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을 들것에 눕혀 사람들 사이를 지나 집까지 데려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좁은 길, 많은 인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얼마든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믿음은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실 수 있다는 확신에서 시작되었고, 그 확신은 실제 행동으로 이어졌습니다.
무리 때문에 예수님께 데려갈 수 없게 되자, 그들은 예수님이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립니다.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의 일반 가옥은 바깥 계단을 통해 지붕으로 올라갈 수 있는 구조였고, 지붕은 나무 들보 위에 가지와 흙을 얹어 다져 만든 경우가 많았습니다. 물론 남의 집 지붕을 여는 일은 결코 가벼운 행동이 아닙니다. 민망함도 있었을 것이고, 주변의 시선도 따가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체면보다 더 중요한 것을 붙들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점잖게 서 있는 것보다, 친구를 예수님 앞으로 데려가는 일이 더 시급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표현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병자의 믿음만 따로 보셨다고 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라고 말씀하십니다(막 2:5). 주님은 함께 짐을 진 사람들의 수고와 믿음을 보고 계셨습니다. 이것은 교회와 성도의 삶에 매우 중요한 장면입니다. 우리는 각자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서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을 주님께 데려가는 통로로도 부름받았습니다. 낙심한 사람이 다시 말씀 앞으로 오도록 곁에서 붙들어 주는 일, 스스로는 기도할 힘조차 없는 사람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일, 발걸음이 무거운 사람의 손을 잡고 예배의 자리로 함께 가는 일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첫 말씀은 뜻밖입니다. 사람들은 병 고침을 기대했을 텐데, 예수님은 먼저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막 2:5). 우리는 종종 눈에 보이는 문제 해결이 가장 급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의 가장 깊은 필요가 어디에 있는지를 아십니다. 육신의 회복은 분명 귀하고 절실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님 앞에서의 죄입니다. 죄 사함 없이는 참된 평안도, 하나님과의 화목도 얻을 수 없습니다. 이 대목은 복음의 중심을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예수님은 단순한 치료자가 아니라 죄를 사하시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말씀을 들은 서기관들은 마음속으로 반응합니다.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는 것입니다(막 2:7). 이들의 말에는 한편으로 옳은 부분이 있습니다. 실제로 죄를 사하는 권세는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예수님 앞에 계신 분이 누구신지를 보지 못했다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중풍병자에게 죄 사함을 선포하는 것과 일어나 걸으라고 말하는 것 중 어느 쪽이 쉽겠느냐고 물으십니다. 그리고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알게 하려 하신다며 병자에게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라고 명하십니다(막 2:11). 그 말씀 앞에서 병자는 곧 일어나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갑니다.
이 기적은 단순히 한 사람의 몸이 회복된 사건이 아닙니다. 보이는 치유가 보이지 않는 권세를 증언하는 표적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병을 고치실 뿐 아니라, 죄인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행위로 의를 얻지 못하고,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습니다. 이 본문을 읽을 때 중요한 것은 저 네 사람처럼 열심을 내면 구원받는다는 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바로 보고, 그분께 나아가는 믿음이 생명의 길이라는 사실을 붙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된 믿음은 반드시 사랑의 수고를 낳습니다.
일상에서 이 말씀은 매우 구체적으로 다가옵니다. 우리 주변에는 겉으로는 괜찮아 보여도 마음이 지쳐 더 이상 혼자 일어설 힘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복되는 실패 때문에 자신을 포기한 사람도 있고, 죄책감과 상처 때문에 말씀을 피하게 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멀리서 건네는 형식적인 한마디가 아니라, 실제로 함께 걸어 주는 사람입니다. 예를 들어 오랫동안 예배를 멀리하던 사람이 다시 나오고 싶어 하면서도 어색함과 두려움 때문에 몇 달을 망설일 수 있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시간을 맞추어 함께 가 주고, 예배 후 조용히 이야기를 들어 주고, 부담 없이 말씀을 나눠 준다면 그 사람에게는 그 작은 동행이 지붕을 열어 주는 일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또 이 본문은 우리의 신앙이 체면을 얼마나 내려놓고 있는지도 묻습니다. 네 사람은 질서 정연한 방식만 고집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는 쪽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믿음은 무례함이나 소란을 미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살리는 일이 내 편안함과 내 이미지보다 앞선다는 점은 분명히 보여 줍니다. 우리는 때로 너무 점잖아서 사랑하지 못하고, 너무 조심스러워서 섬기지 못합니다. 누군가에게 먼저 연락하는 일이 부담스럽고, 먼저 다가가 말을 거는 일이 어색하고, 시간을 내어 함께 있어 주는 일이 번거롭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이 본문은 조용히 묻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말입니다.
마가복음 2장의 이 장면은 결국 우리 자신도 돌아보게 합니다. 사실 우리 역시 한때는 다른 이들의 기도와 권면, 인내와 사랑을 통해 주님 앞으로 인도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스스로 힘 있게 걸어 들어온 것 같아도, 돌아보면 누군가의 눈물과 수고가 우리 뒤에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우리도 누군가에게 그런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거창한 일을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낙심한 이를 쉽게 판단하지 않고, 말씀으로 다시 세우며, 주님께 나아오도록 곁을 지키는 일입니다. 믿음은 혼자만의 확신으로 끝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살리는 방향으로 자랍니다.
동시에 우리는 사람을 주님께 데려가는 일의 중심이 결국 우리의 열심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을 바꾸시는 분은 우리가 아니라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구원자가 아니라 인도하는 자일 뿐입니다. 누군가를 돕다가 즉각적인 변화가 보이지 않아도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복음의 능력은 여전히 살아 있고, 주님은 지금도 죄인을 용서하시며 상한 자를 일으키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사랑으로 짐을 함께 지고, 포기하지 않고, 그 사람을 예수님 앞으로 데려가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사람을 내려놓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자리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지금도 죄인을 고치시고 일으키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더욱 선명하게 보게 됩니다.
Related articles
Preparation Revealed in the Face of Seemingly Late Times: Jesus' Call to Watchfulness
Jesus’ words 'Stay alert' are not about calculating the end date but a call to live holily and faithfully today. We explore the meaning of faith and preparation that emerge more clearly as the wait prolongs.
Meditation on the Parable of Talents: The Weight of Faithfulness with the Time Entrusted to Us
Following the Parable of the Talents in Matthew 25, this reflection considers faithfulness and stewardship rather than comparison. It thoughtfully explores how trusting in the Lord influences our time, responsibilities, and obedience today.
Turn this article into today’s reading habit
Keep your McCheyne plan, sequential reading, notes, and progress together so the next passage is always clear.
- Today’s passages
- Reading checklist
- Notes and highlights

Check today’s reading in the app
Open the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