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흐름은 사도행전에서도 이어집니다. 예수님은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제자들에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사마리아는 단지 지리적 중간 지점이 아닙니다. 가장 가까우면서도 마음으로는 멀리 두던 곳, 역사적 상처와 불신이 남아 있던 곳이 바로 사마리아였습니다. 사도행전 8장에서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전했을 때, 많은 사람이 말씀을 듣고 큰 기쁨이 그 성에 임했습니다. 이것은 복음이 단지 더 멀리 퍼져 나갔다는 뜻만이 아닙니다. 이전에는 함께할 수 없다고 여겨졌던 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 아래로 부름받았다는 뜻입니다.
이 장면은 교리적으로도 매우 중요합니다.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해지고 사도들이 그 일을 확인한 것은, 교회가 민족적 우월감이나 오래된 적대감 위에 세워지는 공동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교회의 기초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구원은 혈통이나 지역이 아니라 은혜로 주어집니다. 죄인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습니다. 사마리아의 수용은 복음의 타협이 아니라, 오히려 복음의 정통성이 얼마나 분명한지를 드러내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며,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서 원수 된 자들까지도 화목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런 배경을 알고 성경을 읽으면, 사마리아는 더 이상 낯선 고유명사가 아닙니다. 분열과 혼합, 오해와 거리감이 쌓인 땅이었지만, 동시에 주님께서 외면하지 않으신 자리였습니다. 요한복음 4장 4절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라고 말합니다. 길의 문제로만 읽어도 뜻은 통하지만, 복음서 전체의 흐름 속에서 보면 그 표현은 더 깊은 의미로 다가옵니다. 사람들이 우회하고 싶어 하던 곳을 주님은 지나가셨고, 그곳에서 한 사람을 만나 마을 전체에 기쁨의 소식이 퍼지게 하셨습니다. 복음은 편한 곳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주님은 늘 우리가 피하고 싶은 자리, 오래된 선입견이 버티고 있는 자리로 들어가십니다.
우리의 일상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나 어떤 부류를 대할 때,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아도 마음속에 선을 긋고 살아가기 쉽습니다. 직접 미워하지는 않는다 해도, 굳이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영역을 만들곤 합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의 성경적 배경을 묵상하다 보면 질문 하나가 남습니다. 나는 복음을 안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마음속 지도를 좁게 그려 놓고 있지 않은가 하는 질문입니다. 예수님은 진리를 타협하지 않으셨지만, 죄인과 상처 입은 사람에게 다가가시는 데에는 주저함이 없으셨습니다. 성경의 배경지식은 단지 아는 즐거움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결국 우리의 시선을 주님의 시선 쪽으로 옮겨 놓아야 합니다.
성경을 읽을 때 사마리아를 떠올려 보십시오. 그 이름 안에는 북왕국의 기억도 있고, 무너진 관계의 역사도 있으며, 예배 논쟁의 상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이름은 복음이 어디까지 닿는지를 보여 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주님은 경계의 땅을 지나셨고, 그곳에서 참된 예배를 가르치셨으며, 사도들을 통해 그 땅에도 동일한 은혜를 부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를 이해한다는 것은 한 지역의 역사를 정리하는 일을 넘어, 복음이 본래 어떤 소식인지를 다시 배우는 일입니다. 복음은 죄인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실 뿐 아니라,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여겼던 인간적 경계가 얼마나 좁은지도 드러냅니다. 성경을 펼칠 때 이 배경을 함께 붙들면, 익숙한 본문은 더 선명해지고 우리 마음의 닫힌 문도 조금씩 열리게 됩니다.
사마리아를 더 넓은 성경 읽기의 흐름 속에서 살펴보고 싶다면 성경 읽기와 365일 읽기 일정을 함께 활용해 보아도 좋습니다. 또한 사마리아가 등장하는 본문들의 연결을 정리할 때는 AI 성경 검색을 참고하면 문맥을 따라가기에 힘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지식을 쌓는 데서 멈추지 않고, 말씀 안에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배우는 것입니다. 사마리아를 향해 나아가신 주님의 걸음을 기억할수록, 우리 역시 복음의 진리 안에서 더 넓고 깊은 순종으로 부름받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