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에서 우리는 종종 자신이 너무 멀리 왔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예배와 말씀의 자리를 놓친 뒤, 스스로를 회복 불가능한 사람처럼 여기기도 합니다. 한두 번 미뤄진 기도가 습관이 되고, 마음이 점점 굳어지면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 자체가 더 어려워집니다. 그때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나님도 나를 실망스럽게 여기실 것이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에스겔 34장은 정반대를 보여 줍니다. 목자 되신 하나님은 흩어진 양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양이 길을 찾는 능력보다 목자가 찾으시는 은혜가 훨씬 크기 때문입니다.
또한 본문은 하나님이 공의로 다스리신다는 사실도 함께 보여 줍니다. 에스겔 34장 후반부에서 하나님은 양과 양 사이를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겔 34:17). 약한 양을 밀치고 옆구리와 어깨로 들이받으며 뿔로 받아 흩어 버리는 강한 자들에 관해도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죄를 가볍게 넘기는 방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상한 자를 싸매시는 분이시지만, 동시에 강포를 기뻐하지 않으시며 불의를 바로잡으시는 분이십니다. 참된 위로는 정의 없는 위로가 아니며, 참된 회복은 진실을 외면한 회복도 아닙니다.
에스겔 34장의 절정은 메시아에 대한 약속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은 “내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겔 34:23)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윗은 이미 오래전에 죽었습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과거의 왕을 다시 세운다는 뜻이 아니라, 다윗의 계보에서 오실 참된 왕, 곧 메시아를 가리키는 약속으로 읽어야 합니다. 성경 전체의 흐름 속에서 이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밝히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 10:1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에스겔이 전한 목자의 약속은 결국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성취됩니다.
이 점은 우리 신앙의 중심과도 연결됩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고, 자기 힘으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죄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습니다. 참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생명을 내어 주심으로 양 된 우리를 살리셨기 때문입니다. 에스겔 34장을 읽을 때 단지 좋은 지도자가 되자는 도덕적 교훈으로만 좁히면 본문의 깊이를 놓치게 됩니다. 이 장은 무엇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그 약속이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성취되는지를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이 말씀을 어떻게 붙들 수 있을까요. 상한 마음을 숨기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강한 척하는 사람만 받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지친 자리, 실패한 자리, 무너진 자리에서도 주님께 정직하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꾸준한 말씀 읽기와 묵상은 다시 목자의 음성을 분별하는 데 큰 힘이 됩니다. 필요하다면 성경 읽기나 오늘의 말씀을 통해 말씀 앞에 머무는 시간을 차분히 회복해 볼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돌보는 자리에서는 내 편의보다 상대의 회복을 먼저 구해야 합니다.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상대를 더 지치게 하는 말이 아니라, 진리 안에서 세우는 말을 선택해야 합니다. 세상의 혼란이 커 보여도 하나님의 목자 되심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시대가 어수선할수록 양 떼는 목자의 음성을 더 분별해야 합니다.
에스겔 34장은 무너진 시대 한복판에서 들려온 말씀입니다. 그래서 더 현실적입니다. 사람은 기대를 무너뜨릴 수 있고, 맡겨진 자리를 사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으며, 공동체는 상처 입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실패 위에 하나님의 말씀이 서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양을 아시고, 찾으시고, 먹이시고, 쉬게 하시며, 공의로 다스리십니다. 이 사실을 붙들면 우리는 사람에게서 받은 실망 때문에 신앙 전체를 포기하지 않게 됩니다. 참 목자는 여전히 자기 백성을 놓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삶이 흩어진 들판처럼 느껴진다면, 먼저 자기 힘으로 길을 찾으려 애쓰기보다 나를 찾으시는 목자의 신실하심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다시 평안이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