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씀은 오늘 우리의 일상을 비춥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안타깝게 여기는 데는 익숙해도, 실제로 시간을 내는 데는 인색할 때가 많습니다. 마음은 있는데 여유가 없다고 말하지요. 하지만 긍휼은 늘 조금 불편한 자리로 우리를 이끕니다. 퇴근길 발걸음을 잠깐 늦추게 하고, 피곤한 저녁에 전화 한 통 하게 만들고, 내 계획을 조금 접고 다른 사람의 짐을 함께 들게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자비는 값싼 감상이 아니었습니다. 로마의 지배 아래에서 유대 땅의 삶은 팍팍했고, 세금 부담과 계층 격차도 컸습니다. 병이 들거나 가족을 잃으면 순식간에 삶의 기반이 흔들렸습니다. 그런 시대에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은 단순한 친절 이상의 부담을 떠안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긍휼은 더 빛났습니다. 모두가 자기 몫을 지키기 바쁠 때, 주님은 가장 약한 이들에게 먼저 눈길을 두셨습니다.
우리의 일상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지각을 반복하는 동료를 보면 무책임하다고 단정하기 쉽습니다. 예민한 가족을 보면 왜 저렇게 까다로운지 속으로 불평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조금만 가까이 가 보면 밤새 아이를 돌본 피곤함이 있을 수 있고, 오래 쌓인 불안과 두려움이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긍휼은 사람을 무조건 좋게 보는 낙관이 아니라, 겉만 보고 끝내지 않는 시선입니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긍휼이 더 어렵다는 사실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낯선 사람에게는 친절한데 가족에게는 쉽게 날이 섭니다. 교회에서는 부드럽게 말하면서 집에서는 퉁명스러워지기도 합니다. 오래 본 사람의 약함은 새롭지 않고, 상처가 반복되면 마음이 먼저 닫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긍휼은 순간적인 감정보다 의식적인 순종에 더 가깝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숙제를 미루고 또 반항적으로 말할 때가 있습니다. 그 순간 부모는 바로 훈계하고 싶어집니다. 물론 잘못은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러나 한 번쯤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이 마음이 어디서 지쳤는지 물어보는 태도는 전혀 다른 문을 열 수 있습니다. 바른 기준과 따뜻한 관심은 함께 갈 수 있습니다.
부부 사이도 그렇습니다. 같은 말을 반복해서 듣다 보면 상대의 사정보다 내 서운함이 먼저 올라옵니다. 그럴 때 긍휼은 문제를 덮는 것이 아니라, 말의 톤을 낮추고 상대가 왜 그렇게 예민해졌는지 다시 살피게 합니다. 해결이 바로 되지 않아도, 그 시선 하나가 관계가 거칠어지지 않도록 붙들어 줍니다.
교회 안에서도 긍휼은 꼭 필요합니다. 겉으로 잘 정리된 사람에게는 쉽게 다가가면서, 말이 어눌하거나 형편이 어려운 사람에게는 어색해지는 때가 있습니다. 신앙의 언어를 오래 사용하다 보면 오히려 사람을 판단하는 속도만 빨라질 수도 있습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에게 먼저 다가가셨는지 자주 떠올려야 합니다. 주님은 약한 이들을 귀찮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고 긍휼이 무조건 참아 주는 것만은 아닙니다. 경계가 필요한 관계가 있고, 거리를 두어야 하는 상황도 분명히 있습니다. 악을 묵인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다만 그때에도 마음 깊은 곳에서 상대의 파멸을 바라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바른 길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태도는 잃지 않아야 합니다. 성경의 긍휼은 선악의 기준을 흐리지 않으면서도 사람을 함부로 버리지 않습니다.
메마른 마음을 점검할 때 도움이 되는 질문이 있습니다. 내가 요즘 가장 쉽게 무시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귀찮다는 이유로 미뤄 둔 연락은 없나요. 누군가의 실수 뒤에 있는 사정을 알려고 하기보다 판단하는 쪽이 더 편하지 않았나요. 이런 질문은 우리를 몰아붙이려는 것이 아니라, 굳어진 마음을 다시 움직이게 하려는 말씀의 손길입니다.
작은 실천 하나면 충분합니다. 오늘 떠오르는 사람 한 명에게 짧게 안부를 물어 보십시오. 답이 오면 서둘러 조언하기보다 먼저 들어 주면 좋겠습니다. 도움이 필요해 보이면 긴 말 대신 지금 건넬 수 있는 한 가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식사 한 끼, 병원 동행, 잠깐의 돌봄은 생각보다 오래 남습니다. 말씀을 더 확인하고 싶다면 성경 읽기나 오늘의 말씀에서 관련 본문을 천천히 다시 읽어 보셔도 좋겠습니다.
우리의 긍휼은 자주 마르고 흔들리지만, 하나님의 긍휼은 마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따뜻한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는 데서 출발하지 않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오래 참아 주셨는지, 얼마나 자주 다시 일으켜 세우셨는지를 기억합니다. 그 기억이 살아날 때 차갑게 굳은 마음도 조금씩 풀립니다.
오늘 사람들 사이를 지나며 눈길을 한 번만 더 머물러 보십시오. 늘 보던 얼굴인데 유난히 지쳐 보이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평소에는 지나쳤을 신호가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받은 사람은 거창한 일을 벌이지 않아도, 하루의 속도를 조금 늦추며 주변에 다른 온기를 남기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