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이어서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고 권합니다. 그리고 이유를 분명히 말합니다.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고린도전서 5:7). 여기서 시선이 단번에 복음으로 옮겨갑니다. 거룩하게 살라는 요구가 그저 도덕적 긴장만 주는 말이 아닌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깨끗하게 만들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미 희생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들입니다. 거룩은 구원을 얻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이 걷는 열매의 길입니다.
유월절 배경을 떠올리면 바울의 말은 더 선명해집니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은 급히 떠날 준비를 하며 누룩 없는 빵을 먹었습니다. 옛 삶을 뒤로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따라 나서는 자리였습니다. 바울은 그 장면을 가져와,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사람답게 옛 누룩을 품고 살지 말라고 권합니다. 입술로는 구원을 말하면서 생활에서는 예전 사람의 냄새를 놓지 않으려는 태도를 흔들어 깨우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8절의 권면은 무겁기만 하지 않고 맑습니다. 바울은 악의와 악독의 누룩이 아니라 순전함과 진실함의 무교병으로 절기를 지키자고 말합니다. 순전함은 꾸밈없는 마음입니다. 진실함은 하나님 앞에서도 사람 앞에서도 다른 얼굴을 쓰지 않는 태도입니다. 신앙은 겉으로 단정해 보이는 연출이 아닙니다. 숨은 자리까지 복음의 빛이 스며드는 삶입니다.
이 말씀을 오늘 하루에 붙여 보면 생각보다 가까운 장면들이 떠오릅니다. 직장에서 작은 편법을 모두가 당연하게 여길 때, 나도 그냥 따라갈지 멈출지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가족과 다투고 난 뒤 내가 한 말의 상처는 외면한 채 상대의 잘못만 붙드는 밤도 있습니다. 휴대폰 화면 앞에서 아무도 모르니 괜찮다고 넘기는 습관, 돈 문제에서 조금만 흐리게 처리하자는 유혹도 비슷합니다. 누룩은 늘 사소한 얼굴로 들어옵니다.
반대로 은혜도 작게 시작됩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짧게라도 사과하는 한마디, 남들 다 한다는 말을 거절하는 조용한 결심, 말씀 앞에서 핑계 대신 회개를 택하는 순간이 삶의 방향을 바꿉니다. 아침에 읽은 한 구절이 낮의 선택을 붙들어 주고, 그 선택이 다시 저녁의 평안을 만듭니다. 거룩은 대단한 사람에게만 있는 특별한 장면이 아닙니다. 복음 때문에 오늘 한 걸음 다르게 걷는 데서 드러납니다.
고린도전서 5장은 우리에게 먼저 남의 죄를 찾아내는 눈을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 안에서 너무 오래 정당화한 것을 살피게 합니다. 나는 무엇을 심각하게 여기고, 무엇은 계속 미루고 있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슬퍼해야 할 죄를 익숙함으로 덮고 있지는 않은지, 회개해야 할 일을 성격이나 환경 탓으로 돌리고 있지는 않은지 조용히 묻게 됩니다.
교회가 거룩을 붙드는 일은 냉혹해지자는 뜻이 아닙니다. 복음을 값싸게 만들지 말자는 뜻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사신 공동체라면 죄를 농담처럼 다루지 않을 것입니다. 동시에 회개하는 사람에게 정죄의 돌을 오래 쥐고 있지도 않을 것입니다. 복음은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지만, 회개하는 죄인을 버리지도 않습니다.
오늘 이 장을 읽으며 너무 멀리 갈 필요는 없습니다. 내 말과 습관과 관계 속에서 묵은 누룩처럼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만 정직하게 붙들어도 충분합니다. 괜찮다고 넘긴 작은 타협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 멈추십시오. 그리고 그 일을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가져가 보십시오. 죄를 숨기는 마음보다 드러내고 돌이키는 마음 위에, 주님은 다시 순전함과 진실함의 길을 열어 주십니다.
매일 성경을 차분히 읽고 싶다면 성경 읽기나 오늘의 말씀을 곁에 두고 본문을 이어서 살펴보아도 좋습니다. 고린도전서처럼 마음을 찌르는 말씀 앞에서는 빨리 지나가기보다 한 구절씩 멈춰 읽는 편이 더 유익할 때가 많습니다. 오늘 고린도전서 5장이 내 안의 무엇을 드러냈는지, 그리고 내가 어떤 순종으로 응답해야 할지 천천히 생각해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