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과 롯의 분리, 선택의 자리에서 드러난 믿음
믿음과 선택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아브라함과 롯의 이야기에서 진정한 신뢰와 하나님의 약속을 배우세요.
Bible Hab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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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과 롯의 분리, 선택의 자리에서 드러난 믿음
믿음과 선택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아브라함과 롯의 이야기에서 진정한 신뢰와 하나님의 약속을 배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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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3장은 아브라함의 삶 가운데서도 매우 현실적인 장면을 보여 줍니다. 믿음의 사람이라고 해서 언제나 놀라운 기적과 웅장한 약속만 경험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면 그 복을 감당하는 자리에서 새로운 시험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아브람과 롯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가축과 재산이 많아지자 함께 머물던 삶의 공간이 점점 비좁아졌고, 결국 목자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성경은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라고 말하고, 이어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있었다고 기록합니다(창 13:6-7). 하나님의 복이 갈등의 원인은 아니지만, 복이 커질수록 사람의 마음과 선택은 더 분명히 드러납니다.
이 장면은 당시의 생활 배경을 생각하면 더욱 선명해집니다. 농경과 목축이 생존의 중심이던 시대에 물과 초지는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습니다. 가축 떼가 많을수록 우물, 풀밭, 이동 경로를 둘러싼 긴장은 쉽게 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구나 창세기 13장 7절은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라고 덧붙입니다. 이것은 아브람과 롯의 갈등이 외부와 단절된 작은 문제가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언약의 가문 안에서 생긴 분쟁이 주변 사람들 앞에 그대로 드러나는 상황이었습니다. 믿음의 사람에게 갈등이 없을 수는 없지만, 그 갈등을 어떻게 다루는가는 믿음의 성숙을 보여 줍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아브람의 태도는 돋보입니다. 그는 연장자였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먼저 받은 사람이었으며, 관계 안에서도 충분히 우선권을 주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권리보다 화평을 먼저 구했습니다. 아브람은 롯에게 “우리는 한 친족이라”라고 말하며 다툼을 멈추자고 권합니다(창 13:8). 여기서 “친족”이라는 말은 단지 혈연 관계만이 아니라, 서로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될 가까운 관계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아브람은 갈등의 상황에서 상대를 이겨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관계를 지켜야 할 대상으로 보았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다음 행동입니다. 아브람은 롯에게 먼저 선택권을 줍니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 13:9)라는 말은 단순한 양보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자기 삶을 책임지신다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손해처럼 보입니다. 더 좋은 땅을 먼저 고를 기회를 내어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눈앞의 유리함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 크게 보았습니다. 땅을 붙드는 것보다 약속하신 하나님을 붙드는 편이 더 안전하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반대로 롯의 선택은 매우 계산적이고 즉각적입니다. 성경은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그곳이 물이 넉넉하고 풍요로워 보였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땅은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라고 묘사됩니다(창 13:10). 이 표현은 롯이 얼마나 눈에 보이는 조건에 마음을 빼앗겼는지를 보여 줍니다. 문제는 그 방향이 소돔 쪽이었다는 데 있습니다. 본문은 이어서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라고 분명히 밝힙니다(창 13:13). 겉으로는 풍요로운 들판을 선택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영적으로 위험한 환경으로 가까이 나아간 것입니다. 성경은 여기서 중요한 원리를 보여 줍니다. 눈에 좋아 보이는 선택이 언제나 믿음의 선택은 아닙니다.
아브람과 롯의 분리의 의미는 단지 친척이 서로 따로 살게 되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이 사건은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하며 살아가는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드러냅니다. 롯은 보이는 풍요를 따라 움직였고, 아브람은 하나님 앞에서 화평을 선택한 뒤 약속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롯이 떠난 후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다시 말씀하십니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창 13:14-15). 롯은 자기 눈으로 먼저 보았고,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이 차이는 매우 큽니다. 사람의 눈은 당장의 이익을 좇기 쉽지만, 믿음의 눈은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현재를 해석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신앙의 원리를 배웁니다. 믿음은 무조건 손해를 감수하는 소극성이 아닙니다. 또한 갈등을 회피하는 나약함도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신뢰하기 때문에 내 권리를 우상처럼 붙들지 않는 태도입니다. 아브람은 자기 몫을 빼앗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채우실 것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양보는 패배가 아니라 신뢰의 열매였습니다. 이신칭의의 복음을 아는 성도 역시 자기 의나 자기 힘으로 삶을 보장받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과 신실하신 언약의 주를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도 비슷한 순간이 자주 찾아옵니다. 직장에서의 자리, 가정 안의 의견 충돌, 재정 문제, 인간관계의 자존심 앞에서 우리는 쉽게 “내가 먼저 가져야 한다”는 마음으로 기웁니다. 그러나 모든 갈등에서 반드시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이 믿음은 아닙니다. 물론 성경은 진리를 버리고 타협하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죄를 죄라 부르는 일, 진리를 지키는 일, 맡겨진 책임을 감당하는 일은 분명히 필요합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우리의 싸움은 진리 때문이 아니라 자존심과 탐심 때문에 커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내 선택의 기준이 하나님의 뜻인지, 내 욕심인지 정직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창세기 13장을 다시 읽을 때는 성경 읽기에서 본문을 천천히 확인하며 아브람의 말과 롯의 시선을 나란히 따라가 보면 좋습니다. 특히 “롯이 눈을 들어”와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너는 눈을 들어”라고 하시는 대조를 주목해 보십시오. 같은 땅을 두고도 누가 무엇을 기준으로 바라보는지가 전혀 다르게 나타납니다. 또한 묵상이란을 참고해 본문 관찰과 적용을 함께 정리해 보면, 이 사건이 단지 과거의 가족 분쟁이 아니라 오늘 내 선택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사실이 더 분명해집니다.
이 사건은 결국 분리의 이야기를 넘어, 분리 속에서 드러난 신뢰의 이야기입니다. 아브람은 상황을 완전히 통제하려 하지 않고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반면 롯은 당장의 풍요를 따라갔습니다. 이후 창세기의 전개를 보면 두 선택의 열매는 결코 같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롯의 분리를 묵상할 때 우리에게 남는 질문은 분명합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기준으로 결정하고 있는가? 눈에 넉넉해 보이는 자리인가, 아니면 하나님 앞에서 화평을 지키며 약속을 신뢰하는 자리인가?
이번 주에는 갈등이 있는 관계를 떠올리며, 내 주장부터 앞세우기 전에 먼저 내려놓을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차분히 적어 보십시오. 그리고 오늘의 말씀을 통해 하루를 시작하며, 내가 붙들어야 할 것은 유리한 조건이 아니라 신실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다시 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을수록 가장 좋아 보이는 길보다 하나님 앞에서 바른 길이 무엇인지 묻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방치하지 않으시며,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를 약속 안에서 인도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