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휼이란 무엇인가 마음이 굳을 때
긍휼은 마음이 약해지는 일이 아니라, 가까이 가서 손 내미는 믿음입니다.
Bible Hab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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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휼이란 무엇인가 마음이 굳을 때
긍휼은 마음이 약해지는 일이 아니라, 가까이 가서 손 내미는 믿음입니다.
Bible Hab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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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이 오래되면 의외로 무뎌지는 자리가 있습니다. 말씀은 꾸준히 듣고 기도도 쉬지 않는데, 정작 가까운 사람의 한숨에는 반응이 늦어질 때가 있지요. 겉으로는 별일 없어 보여도 마음은 조금씩 굳어 갑니다. 성경이 말하는 긍휼은 바로 그 굳은 자리를 흔들어 깨웁니다.
긍휼은 단순히 마음이 약하거나 눈물이 많은 상태가 아닙니다. 성경에서 긍휼은 아픈 이를 보고 지나치지 않는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불쌍하다고 느끼는 데서 멈추지 않고 손을 내밀고 시간을 내며, 때로는 내 편안함을 내려놓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무엇보다 긍휼의 시작은 우리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습니다. 시편 103편 13절은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차갑게 평가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모르셔서 참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너무 잘 아시기에 오래 참으시고 붙드십니다.
같은 시편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먼지임을 기억하신다고 말합니다(시 103:14). 이 말은 사람을 하찮게 본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쉽게 지치고 흔들리는 존재를 향한 하나님의 부드러운 시선을 보여 줍니다. 은혜 없이는 설 수 없는 인생이라는 사실을 아실 때, 주님의 긍휼은 더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구약에서 긍휼은 하나님의 언약과 자주 함께 나타납니다. 이스라엘은 여러 번 하나님을 잊고 제 길로 갔지만, 주님은 자기 백성을 쉽게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징계가 없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징계 가운데서도 언약을 깨뜨리지 않으셨다는 뜻입니다. 성경의 긍휼은 죄를 가볍게 넘기는 느슨함이 아니라, 거룩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죄인을 다시 부르시는 사랑입니다.
출애굽기 34장 6절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긍휼이 많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으로 드러내십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만든 뒤에 주어진 고백이라는 점에서 더 깊이 다가옵니다. 백성은 크게 넘어졌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성품대로 다시 길을 여셨습니다. 긍휼은 죄를 없는 일처럼 만드는 힘이 아니라, 죄인에게 회개의 문을 다시 열어 주는 은혜입니다.
우리는 종종 긍휼을 우유부단함과 헷갈립니다. 잘못을 못 본 척하거나 기준을 낮추는 것이 자비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성경의 긍휼은 진실을 흐리지 않습니다. 죄를 죄라 부르되, 그 사람까지 버리지 않는 태도입니다. 그래서 긍휼은 부드러운 감정만이 아니라, 거룩과 사랑이 함께 서 있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하나님의 긍휼이 눈앞에 보이는 장면입니다. 마태복음 9장 36절은 예수님께서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으니”라고 기록합니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 같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겉모습만 보지 않으셨습니다. 혼란과 피로, 방황과 두려움이 뒤엉킨 속사정까지 함께 보셨습니다.
목자 없는 양이라는 표현은 당시 사람들에게 아주 선명했을 것입니다. 양은 스스로 길을 잘 찾지 못하고, 위험을 분별하는 힘도 약합니다. 목자가 없으면 흩어지고 상하며 맹수 앞에 쉽게 무너집니다. 예수님은 군중 속에서 바로 그런 영혼들을 보셨습니다. 사람 수가 많다는 사실보다, 돌봄을 잃은 상태가 먼저 보이셨던 것입니다.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긍휼이 구체적인 몸짓으로 드러나는 장면이 자주 나옵니다. 예수님은 나병환자에게 손을 대시고(마 8:3), 맹인의 부르짖음을 그냥 넘기지 않으시며(막 10:46-52), 장례 행렬 속 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눅 7:13). 당시 유대 사회에는 정결 규례와 사회적 경계가 분명했습니다. 병든 사람, 가난한 사람, 죄인으로 낙인찍힌 사람은 자연스레 주변으로 밀려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거룩과 자비를 함께 드러내시며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셨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도 긍휼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보여 줍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다친 사람을 보고 지나갔지만, 사마리아인은 가까이 가서 상처를 싸매고 여관에 맡기며 비용까지 감당합니다(눅 10:33-35). 여기서 긍휼은 마음속 동정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발걸음을 멈추고, 손을 더럽히고, 지갑을 여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예수님은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0:37).
이 말씀은 오늘 우리의 일상을 비춥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안타깝게 여기는 데는 익숙해도, 실제로 시간을 내는 데는 인색할 때가 많습니다. 마음은 있는데 여유가 없다고 말하지요. 하지만 긍휼은 늘 조금 불편한 자리로 우리를 이끕니다. 퇴근길 발걸음을 잠깐 늦추게 하고, 피곤한 저녁에 전화 한 통 하게 만들고, 내 계획을 조금 접고 다른 사람의 짐을 함께 들게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자비는 값싼 감상이 아니었습니다. 로마의 지배 아래에서 유대 땅의 삶은 팍팍했고, 세금 부담과 계층 격차도 컸습니다. 병이 들거나 가족을 잃으면 순식간에 삶의 기반이 흔들렸습니다. 그런 시대에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은 단순한 친절 이상의 부담을 떠안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긍휼은 더 빛났습니다. 모두가 자기 몫을 지키기 바쁠 때, 주님은 가장 약한 이들에게 먼저 눈길을 두셨습니다.
우리의 일상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지각을 반복하는 동료를 보면 무책임하다고 단정하기 쉽습니다. 예민한 가족을 보면 왜 저렇게 까다로운지 속으로 불평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조금만 가까이 가 보면 밤새 아이를 돌본 피곤함이 있을 수 있고, 오래 쌓인 불안과 두려움이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긍휼은 사람을 무조건 좋게 보는 낙관이 아니라, 겉만 보고 끝내지 않는 시선입니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긍휼이 더 어렵다는 사실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낯선 사람에게는 친절한데 가족에게는 쉽게 날이 섭니다. 교회에서는 부드럽게 말하면서 집에서는 퉁명스러워지기도 합니다. 오래 본 사람의 약함은 새롭지 않고, 상처가 반복되면 마음이 먼저 닫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긍휼은 순간적인 감정보다 의식적인 순종에 더 가깝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숙제를 미루고 또 반항적으로 말할 때가 있습니다. 그 순간 부모는 바로 훈계하고 싶어집니다. 물론 잘못은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러나 한 번쯤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이 마음이 어디서 지쳤는지 물어보는 태도는 전혀 다른 문을 열 수 있습니다. 바른 기준과 따뜻한 관심은 함께 갈 수 있습니다.
부부 사이도 그렇습니다. 같은 말을 반복해서 듣다 보면 상대의 사정보다 내 서운함이 먼저 올라옵니다. 그럴 때 긍휼은 문제를 덮는 것이 아니라, 말의 톤을 낮추고 상대가 왜 그렇게 예민해졌는지 다시 살피게 합니다. 해결이 바로 되지 않아도, 그 시선 하나가 관계가 거칠어지지 않도록 붙들어 줍니다.
교회 안에서도 긍휼은 꼭 필요합니다. 겉으로 잘 정리된 사람에게는 쉽게 다가가면서, 말이 어눌하거나 형편이 어려운 사람에게는 어색해지는 때가 있습니다. 신앙의 언어를 오래 사용하다 보면 오히려 사람을 판단하는 속도만 빨라질 수도 있습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에게 먼저 다가가셨는지 자주 떠올려야 합니다. 주님은 약한 이들을 귀찮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고 긍휼이 무조건 참아 주는 것만은 아닙니다. 경계가 필요한 관계가 있고, 거리를 두어야 하는 상황도 분명히 있습니다. 악을 묵인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다만 그때에도 마음 깊은 곳에서 상대의 파멸을 바라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바른 길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태도는 잃지 않아야 합니다. 성경의 긍휼은 선악의 기준을 흐리지 않으면서도 사람을 함부로 버리지 않습니다.
메마른 마음을 점검할 때 도움이 되는 질문이 있습니다. 내가 요즘 가장 쉽게 무시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귀찮다는 이유로 미뤄 둔 연락은 없나요. 누군가의 실수 뒤에 있는 사정을 알려고 하기보다 판단하는 쪽이 더 편하지 않았나요. 이런 질문은 우리를 몰아붙이려는 것이 아니라, 굳어진 마음을 다시 움직이게 하려는 말씀의 손길입니다.
작은 실천 하나면 충분합니다. 오늘 떠오르는 사람 한 명에게 짧게 안부를 물어 보십시오. 답이 오면 서둘러 조언하기보다 먼저 들어 주면 좋겠습니다. 도움이 필요해 보이면 긴 말 대신 지금 건넬 수 있는 한 가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식사 한 끼, 병원 동행, 잠깐의 돌봄은 생각보다 오래 남습니다. 말씀을 더 확인하고 싶다면 성경 읽기나 오늘의 말씀에서 관련 본문을 천천히 다시 읽어 보셔도 좋겠습니다.
우리의 긍휼은 자주 마르고 흔들리지만, 하나님의 긍휼은 마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따뜻한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는 데서 출발하지 않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오래 참아 주셨는지, 얼마나 자주 다시 일으켜 세우셨는지를 기억합니다. 그 기억이 살아날 때 차갑게 굳은 마음도 조금씩 풀립니다.
오늘 사람들 사이를 지나며 눈길을 한 번만 더 머물러 보십시오. 늘 보던 얼굴인데 유난히 지쳐 보이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평소에는 지나쳤을 신호가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받은 사람은 거창한 일을 벌이지 않아도, 하루의 속도를 조금 늦추며 주변에 다른 온기를 남기게 됩니다.
판단보다 먼저 멈춰 서는 마음, 호세아서가 비추는 하나님의 긍휼
호세아 6장 6절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판단보다 긍휼을 앞세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묵상합니다. 진리와 자비를 함께 붙드는 복음의 태도를 일상 속에서 돌아보게 합니다.
사랑은 감정 너머의 순종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길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단순한 감정을 넘어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이웃을 향한 구체적 실천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복음 안에서 사랑이 어떻게 자라고 드러나는지 살펴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지나치지 않는 사랑
누가복음 10장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따라, 보고도 지나치지 않는 이웃 사랑과 주님의 자비를 오늘 삶에 적용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