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0편, 숨어 계신 듯한 때에도 놓치지 말아야 할 고백
시편 10편은 하나님이 보시며 통치하심을 믿는 믿음의 고백과 탄식을 담고 있습니다.
Bible Habit
1 / 5
시편 10편, 숨어 계신 듯한 때에도 놓치지 말아야 할 고백
시편 10편은 하나님이 보시며 통치하심을 믿는 믿음의 고백과 탄식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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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0편은 읽는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 만큼 현실적입니다. 악인은 높아 보이고, 가난한 자와 고아 같은 약한 사람은 쉽게 짓눌립니다. 더 답답한 것은 시인의 첫 질문입니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시 10:1). 이것은 믿음이 없어서 던지는 질문이라기보다, 하나님을 알기에 더 견디기 어려운 탄식입니다. 성경은 이런 질문 자체를 금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직접 아뢰도록 이끕니다.
이 시편의 흐름은 분명합니다. 먼저 시인은 악인의 모습을 길게 묘사합니다. 그는 “그의 마음의 욕심을 자랑하며 탐욕을 부리는 자는 여호와를 배반하여 멸시하나이다”라고 말합니다(시 10:3). 또한 악인은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는 태도로 살아갑니다(시 10:4).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교만입니다. 시편 10편이 보여 주는 악은 단순한 실수나 일시적 흔들림이 아니라,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자율성의 선언입니다. 그래서 악인은 스스로 흔들리지 않을 것처럼 말하며, 눈앞의 성공을 영원한 안전으로 착각합니다.
또 하나 눈여겨볼 부분은 입술의 죄입니다. 시편 10편은 악인의 말이 얼마나 분명한 죄의 통로가 되는지 보여 줍니다. “그의 입에는 저주와 속임수와 포학이 충만하며” (시 10:7)라는 말씀처럼, 마음의 교만은 결국 말로 드러납니다. 사람을 무너뜨리는 비꼼, 사실을 흐리는 거짓, 강한 척하며 약자를 짓누르는 언어가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악을 거대한 사건에서만 찾기 쉽지만, 하나님은 말의 습관 속에서도 악인의 길을 드러내십니다. 직장에서 누군가를 의도적으로 깎아내리는 말, 가정에서 상대를 작아지게 만드는 냉소, 온라인에서 쉽게 던지는 조롱 역시 시편 10편의 빛 아래 놓아야 합니다.
이 시편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또 다른 축은 약한 자입니다. 곤고한 자, 외로운 자, 고아가 계속 등장합니다. 악인은 숨어 기다리며 힘없는 사람을 노립니다(시 10:8-10). 죄는 언제나 힘의 불균형을 이용합니다. 그래서 성경의 공의는 추상적 개념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것은 실제로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시선과 연결됩니다. 시편 10편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나는 억울한 일을 당할 때만 정의를 원하고, 내가 유리한 자리에 있을 때는 침묵하지 않는가? 나는 힘없는 사람의 처지를 진지하게 돌아보는가?
하지만 시편은 절망의 묘사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전환점은 12절입니다.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하나님이여 손을 드옵소서 가난한 자들을 잊지 마옵소서.” 시인은 상황이 이미 바뀌었기 때문에 담대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기억했기 때문에 다시 부르짖습니다. 그리고 14절은 시편 10편의 중심에 가까운 고백입니다. “주께서는 보셨나이다 주는 재앙과 원한을 감찰하시고 주의 손으로 갚으려 하시오니.” 악인은 하나님이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시인은 하나님이 이미 보고 계신다고 고백합니다. 믿음은 보이는 결과가 생긴 다음에야 안심하는 태도가 아니라, 결과보다 먼저 하나님의 시선을 신뢰하는 일입니다.
마지막은 왕 되신 하나님에 대한 고백으로 닫힙니다. “여호와께서는 영원무궁하도록 왕이시니이다” (시 10:16). 처음에는 숨으신 듯한 하나님을 향한 탄식으로 시작했지만, 마지막은 왕이신 하나님에 대한 확신으로 끝납니다. 이것이 시편 10편의 큰 흐름입니다. 탄식에서 관찰로, 관찰에서 간구로, 간구에서 왕이신 하나님에 대한 확신으로 나아갑니다. 현실은 여전히 거칠고 문제가 곧바로 사라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인의 중심은 이미 옮겨졌습니다.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께 시선이 고정된 것입니다.
이 본문은 실생활에 매우 구체적으로 적용됩니다. 억울함이 생길 때 즉시 사람 앞에서만 결론 내리지 말고 하나님께 먼저 마음의 언어를 올려 드려야 합니다. 감정을 무조건 눌러 버리는 것도, 곧바로 폭발시키는 것도 믿음의 길이 아닙니다. 시편 10편처럼 사실을 정직하게 말하되 하나님께 말해야 합니다. 내 말의 습관을 점검해야 합니다. 오늘 내가 한 말 가운데 누군가를 세우는 말보다 움츠러들게 하는 말이 더 많았다면, 그것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닙니다. 약한 자를 향한 태도를 살펴야 합니다. 바쁠수록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을 부담으로 여기기 쉽지만, 하나님은 바로 그런 자리에서 우리의 경건이 진실한지 드러내십니다.
시편을 읽을 때는 앞선 시편과 연결해서 보는 것도 힘이 됩니다. 성경 읽기에서 시편 9편과 10편을 함께 읽으면 공의의 하나님을 향한 탄식과 신뢰의 흐름이 더 또렷해집니다. 또한 반복되는 단어를 붙잡고 천천히 관찰하면 묵상이 쉽게 흩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의 말씀처럼 한 구절에 시선을 머물게 하는 습관은 시편을 읽을 때 특히 유익합니다. 성경 읽는 흐름이 자주 끊긴다면 오늘의 맥체인 읽기표를 참고해 정해진 분량을 꾸준히 따라가는 것도 힘이 됩니다. 더 넓게는 맥체인 성경읽기란을 함께 살펴보면 시편 읽기를 성경 전체의 흐름 속에서 이해하는 데 유익합니다.
시편 10편은 “왜 하나님은 침묵하시는가”라는 질문에 관해 모든 이유를 설명해 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질문을 품은 사람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악인의 번영이 마지막 장면이 아니며, 하나님의 침묵처럼 보이는 시간이 곧 하나님의 무관심을 뜻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보고 계시고, 감찰하시며, 마침내 의로 판단하십니다. 그리고 지금도 영원히 왕이십니다.
이 시편을 읽는 우리는 두 가지를 함께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는 정직한 탄식입니다. 다른 하나는 흔들리지 않는 고백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아프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이 여전히 왕이심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내 삶에 아직 정리되지 않은 문제가 남아 있고, 악이 더 커 보이며, 하나님의 응답이 더딘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럴수록 시편 10편의 고백은 더욱 필요합니다. 보이지 않는 듯한 때에도 하나님은 보지 않으시는 분이 아니며, 침묵하시는 듯한 때에도 다스리기를 멈추지 않으십니다. 믿음은 바로 그 사실을 붙들고 오늘도 하나님께 시선을 돌리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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