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심 산에서 시작해 사도행전까지: 사마리아를 알면 보이는 복음의 경계 허무심

그리심 산에서 시작해 사도행전까지: 사마리아를 알면 보이는 복음의 경계 허무심
성경을 읽다 보면 사마리아는 자주 등장하지만, 막상 정확히 설명하려고 하면 막연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갈릴리와 유대 사이에 있는 지역이라는 정도는 알지만, 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에 그렇게 깊은 거리감이 있었는지, 또 왜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사마리아가 중요한 전환점처럼 등장하는지는 놓치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의 지리와 역사를 알고 본문을 읽으면, 익숙하던 장면들이 훨씬 입체적으로 다가옵니다. 사마리아는 단지 중간에 놓인 땅이 아니라, 오래된 분열의 상처가 남아 있던 자리였고, 바로 그 자리에서 복음의 넓이와 깊이가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지리적으로 사마리아는 북쪽 갈릴리와 남쪽 유대 사이에 놓인 중부 산악 지대입니다. 그래서 이 지역은 남북 이동의 통로이기도 했고, 때로는 갈등의 경계선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구약에서 사마리아는 북이스라엘 왕국의 정치적 중심과 연결됩니다. 열왕기상 16장 24절은 오므리가 세멜에게서 산을 사고 그 위에 성을 건축한 뒤 그 이름을 사마리아라고 하였다고 기록합니다. 처음에는 한 도시의 이름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주변 지역 전체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넓어졌습니다. 성경의 지명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그 안에 역사와 기억이 층층이 쌓여 있다는 사실을 여기서도 볼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를 이해할 때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은 북이스라엘의 멸망입니다. 열왕기하 17장을 보면, 앗수르가 사마리아를 점령한 뒤 여러 민족을 그 땅에 이주시켰습니다. 그 결과 원래 남아 있던 사람들과 외부에서 들어온 이들이 섞이게 되었고, 신앙 역시 혼합된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열왕기하 17장 33절은 “이 백성이 여호와도 경외하고 또한 어디서부터 옮겨 왔든지 그 민족의 풍속대로 자기의 신들도 섬겼더라”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이 사마리아를 불편하게 바라본 이유는 단순한 지역감정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언약 백성의 정체성과 예배의 순수성에 대한 오랜 문제의식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사마리아인들도 자신들이 하나님과 무관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섬긴다고 여겼고, 모세오경을 권위 있는 말씀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다만 예배의 중심에 대해 유대인들과 다른 입장을 가졌습니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여겼다면,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 산을 중요하게 보았습니다. 이 배경을 알고 보면 요한복음 4장의 대화가 훨씬 또렷해집니다. 수가의 여인이 예수님께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라고 한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수백 년 동안 이어진 예배 논쟁의 중심을 건드리는 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질문 앞에서 단순히 갈등을 중재하는 수준으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요한복음 4장 22절에서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고 하시고, 이어 23절에서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배 장소를 가볍게 상대화한 선언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이 메시아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며, 참된 예배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 열리게 된다는 뜻입니다. 예루살렘이냐 그리심 산이냐의 논쟁을 넘어,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가 누구를 통해 가능해지는지를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4장은 한 여인의 사연만 다루는 본문이 아니라, 갈라진 역사 위에 서서 구원의 시대가 열렸음을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또한 요한복음 4장 9절은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라고 덧붙입니다. 이 짧은 설명만으로도 당시의 긴장감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피하던 관계의 선을 스스로 넘어가셨습니다. 상대가 사마리아인이라는 이유로 거리를 두지 않으셨고, 오히려 먼저 말을 건네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진리를 희미하게 만드는 포용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의 삶을 정확히 드러내시고, 동시에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을 밝히셨습니다. 복음은 죄를 덮어 두는 방식으로 화해를 말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진리를 밝히 드러내면서도, 죄인을 은혜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 흐름은 사도행전에서도 이어집니다. 예수님은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제자들에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사마리아는 단지 지리적 중간 지점이 아닙니다. 가장 가까우면서도 마음으로는 멀리 두던 곳, 역사적 상처와 불신이 남아 있던 곳이 바로 사마리아였습니다. 사도행전 8장에서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전했을 때, 많은 사람이 말씀을 듣고 큰 기쁨이 그 성에 임했습니다. 이것은 복음이 단지 더 멀리 퍼져 나갔다는 뜻만이 아닙니다. 이전에는 함께할 수 없다고 여겨졌던 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 아래로 부름받았다는 뜻입니다.
이 장면은 교리적으로도 매우 중요합니다.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해지고 사도들이 그 일을 확인한 것은, 교회가 민족적 우월감이나 오래된 적대감 위에 세워지는 공동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교회의 기초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구원은 혈통이나 지역이 아니라 은혜로 주어집니다. 죄인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습니다. 사마리아의 수용은 복음의 타협이 아니라, 오히려 복음의 정통성이 얼마나 분명한지를 드러내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며,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서 원수 된 자들까지도 화목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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