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드려야 했지만 드릴 수 없었던 완전한 순종을 이루셨고,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지셨습니다. 그래서 죄인은 자신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습니다. 이것은 신앙의 주변부가 아니라 중심입니다. 인간은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습니다. 바울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롬 3:28)라고 선언합니다. 율법이 우리의 상처를 드러낸다면, 복음은 그 상처를 덮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그리스도인은 율법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더 이상 율법으로 구원을 얻으려는 방식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율법을 필요 없는 유물처럼 밀어내서도 안 됩니다. 율법은 여전히 하나님의 뜻과 성품을 가르칩니다. 우리는 율법을 통해 하나님이 무엇을 미워하시고 무엇을 기뻐하시는지 배웁니다. 동시에 그 기준 앞에서 내가 얼마나 쉽게 흔들리는지도 정직하게 보게 됩니다. 이 두 가지가 함께 갈 때, 율법 읽기는 정죄에 짓눌리는 시간이 아니라 복음 안에서 더 낮아지고 더 맑아지는 시간이 됩니다.
이 점은 성경 통독이란 무엇인지 생각할 때도 중요합니다.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다 보면 율법, 역사서, 시편, 선지서, 복음서와 서신서가 서로 끊어진 책이 아니라 하나의 구속사 안에서 연결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또 맥체인 성경읽기란 관점으로 읽으면 구약과 신약을 함께 따라가며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힘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읽는 양 자체보다, 말씀 전체가 결국 그리스도를 증언한다는 사실을 붙드는 것입니다.
일상에서도 그렇습니다. 직장에서 사소한 거짓은 다들 하는 일이라고 여기기 쉽습니다. 실적을 조금 부풀리고, 책임을 슬쩍 피하고, 유리한 말만 남기는 것은 세상에서 능숙함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그것이 지혜의 문제가 아니라 진실의 문제로 드러납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바깥에서는 예의 바르고 신앙적인 사람처럼 보여도, 가까운 이들에게는 날카로운 말과 무관심을 쏟아낼 수 있습니다. 율법은 이런 분리된 삶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따로 자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읽을 때 우리는 단순히 “해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에서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이 말씀 속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으로 나타나시는가, 나는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며 무엇에 기대고 있는가를 함께 물어야 합니다. 이런 방식의 읽기는 묵상이란 무엇인지 더 잘 보여 줍니다. 율법은 딱딱한 조문집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세우는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필요하다면 오늘의 말씀처럼 짧은 본문부터 천천히 붙들고, 성경 읽기나 365일 읽기 일정을 활용해 꾸준히 읽어 가는 것도 힘이 됩니다.
결국 율법은 복음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필요를 깊이 깨닫게 합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기준을 낮추지 않고, 복음은 그 높은 기준 앞에서 무너진 죄인을 그리스도 안에서 살려 냅니다. 그래서 율법을 진지하게 읽는 사람은 자기 자랑으로 나아가지 않고 은혜 쪽으로 더 가까이 갑니다. 그리고 복음을 아는 사람은 율법을 두려운 채무 문서처럼 보는 대신, 거룩하신 하나님이 어떤 삶으로 우리를 빚어 가시는지 배우게 됩니다. 시내산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거룩하심의 요구는 십자가에서 흐려지지 않았고, 오히려 그리스도 안에서 얼마나 크고 무거운 사랑이 우리를 붙드시는지 더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말씀을 읽다가 율법의 엄중함 앞에서 마음이 무거워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무거움이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도록 두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그 자리에서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거룩과, 그런 죄인을 위해 자기 아들을 내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함께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때 율법은 우리를 정죄 속에 가두는 벽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깨닫게 하는 통로가 됩니다. 오늘도 말씀 앞에 자신을 세우는 사람은 자기 힘이 아니라 복음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길을 다시 배우게 될 것입니다.